모조품으로서의 전자기기, 그리고 20와트짜리 본체의 위엄
오늘 웹툰을 보다가 문득 뇌의 연산 메커니즘에 대한 생각이 스쳤다.
만화와 웹툰은 기본적으로 '정지된 컷(Frame)들의 배열'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정지된 컷과 다음 컷 사이의 빈 공간에 실시간으로 프레임 보간 연산을 수행한다.
인물의 동선, 카메라의 앵글, 물리적 공간감, 심지어 행간에 숨겨진 감정선까지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3D 시뮬레이션으로 렌더링 해버리는 것이다.
웹툰을 다 보고 난 뒤 밀려오는 특유의 피로감과 괴리감은,
나의 뇌가 정지된 이미지 몇 장을 가지고 고해상도 그래픽 엔진을 가동하느라
엄청난 연산 자원을 소모했다는 생체적 반작용이다.
그렇다면 과연 '생각'이란 무엇인가?
물리적 레벨에서 인간의 생각은 뇌 속 860억 개의 뉴런(Neuron) 사이를 시냅스라는 전극으로 이어 붙여,
초당 수백만 번 쏘아대는 전기 신호(가변적 전하 흐름)와 화학 물질의 파동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 전자제품은 독창적인 발명품이 아니다.
그저 이 인간의 생체 아키텍처를 그대로 베껴 만든 복제본일 뿐이다.
1. 연산 장치 (CPU / ALU)
- 컴퓨터 CPU: 실리콘 반도체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에 전압을 걸어 0과 1의 논리 연산을 처리한다.
- 인간의 뇌: 860억 개의 뉴런과 수백조 개의 시냅스가 실시간 전기·화학 신호를 교차 발생시키며 생각, 예측, 데이터 가공을 동시에 수행한다.
2. 주기억 장치 (RAM & Cache)
- 컴퓨터 RAM: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데이터를 임시로 올려두며, 전원이 꺼지면 날아가는 휘발성 메모리다.
- 인간의 작업 기억 (Working Memory):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업무 흐름을 유지하며, '퇴근 30분 전' 같은 실시간 가상 스레드를 뇌상에 잠시 띄워두는 휘발성 데이터 영역이다.
3. 입출력 포트 & GPU 렌더링
- 컴퓨터 GPU / 센서: 외부 광학·음향 신호를 받아 비트맵 픽셀이나 디코딩된 오디오 데이터로 복원한다.
- 인간의 감각기관 & 시각 후두엽: 눈의 망막과 귀의 달팽이관을 통해 입력된 정지 파동을 뇌내 보간 엔진으로 가져와, 감정과 공간감이 결합된 풀 HD 3D 오케스트라로 실시간 변환한다.
복제본의 한계와 본체(Body)의 위엄
인간이 스스로 만든 전자제품의 라인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자기 몸의 기능을 하나씩 떼어내어 따라 하려 애쓴 흔적에 불과하다.
- 뇌(Brain) 복제 시도: 뉴런 연산 구조를 흉내 낸 CPU·NPU·인공신경망(Neural Network), 작업 기억을 흉내 낸 RAM, 장기 기억을 흉내 낸 SSD/HDD.
- 감각 포트(Sensor Port) 복제 시도: 눈의 수정체와 망막을 흉내 낸 CMOS 광학 센서, 귀의 달팽이관 진동 감지를 흉내 낸 마이크, 피부의 촉각을 흉내 낸 압력 센서와 터치스크린.
그러나 이 복제 시도의 차이가 심한지는 '전력 효율' 하나만 봐도 명백히 드러난다.
인간이 최고라 자랑하는 H100, RTX GPU나 수천억 원짜리 데이터센터 슈퍼컴퓨터는
고작 데이터 몇 조각을 연산하기 위해 수백 킬로와트(kW)의 전력을 퍼먹으며 열을 내뿜는다.
반면 창조주가 인간에게 탑재해 준 생체 본체 CPU는 무엇인가?
점심에 먹은 국밥 한 그릇, 단 '20와트(W)'짜리 초저전력으로 실시간 3D 프레임 보간,
음향 합성, 공간 인식,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메타인지 디버깅까지 완벽하게 돌려버린다.
평생 가슴속에 새겨지는 잊지 못할 기억들은 절대로 고장 나지 않는 불멸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다.
반면 스쳐 지나가는 불필요한 관념과 자극들은 그저 휘발성 램(RAM)에 잠깐 올렸다가 포맷팅 할 뿐이다.
결국 컴퓨터와 세상 모든 전자기기는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구조조차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정교하게 설계된 본체를 조잡하게 모방해 낸 0과 1의 전기 신호 장난감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인간의 에너지 소모를 더 효율적으로 줄이기 위해
우리가 그렇게 모방하면서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미 엄청나게 최적화시킨 시스템을 우린 모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꼴이지
하지만 그래도 그런 노력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
물론 쇼츠만 봐서 아무 생각도 못하는 너는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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