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연히 벌의 생태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곤충의 세계는 참으로 기묘하다.
오로지 입력된 방향으로만 직진하는 '하드코딩된 상태'라고 해야 할까.
여왕벌의 탄생 과정은 자못 서늘하다. 벌들은 몇 개의 왕대를 만들고,
그중 가장 먼저 태어난 맏이 여왕벌은 본능적으로 ‘투팅(Tooting)’ 울음소리를 내어 경쟁자를 호출한다.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다른 여왕벌 후보들은 본능적으로 ‘쾌킹(Quacking)’으로 응답하고,
맏이는 그 소리를 따라 찾아가 경쟁 상대를 망설임 없이 찔러 죽인다.
이 잔혹한 처형식에 일벌들은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가장 강하고 건강한 유전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후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여왕벌만이 왕국의 정통성을 얻고 알을 낳는다.
이것은 일벌과 여왕벌 사이에 맺어진 철저하고 불가피한 시스템 계약이다.
이 흐름은 절대 깨질 수 없다. 깨지는 순간, 왕국 전체의 생존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행되는 이 행동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무조건적인 필수 입력 알고리즘이구나.’
곤충들은 오직 입력된 본능의 프로그램대로 움직일 뿐이다.
만약 지구의 순환과 생태계 공급을 담당하는 이 수많은 곤충에게
'자유의지'라는 변수가 부여된다면, 지구의 순환 시스템은 그 즉시 붕괴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직 본능이라는 소스 코드에 맞춰 자신에게 주어진 퀘스트를 수행할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서늘한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 사회의 상위 시스템 계층에 서 있는 인간들을 보라.
그들의 행동 양식은 곤충의 알고리즘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자신이 살아남고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서슴없이 경쟁자를 무너뜨린다.
그 과정에서 그 어떤 죄책감이나 도덕적 주춤거림도 느끼지 않는다.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 승리할 수 없음을, 그 감정적 렉(Lag)이 곧 패배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이 지구 세트장의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 그곳에 군림하고 싶다면 기억해야 한다.
그곳은 자아를 내려놓은 정갈한 자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곤충처럼 미친 듯이 자아를 풀발기시켜 경쟁자를 깔아뭉개는,
'가장 본능적이고 야만적인 프레임'을 완성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곤충들의 왕국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묻고 싶다.
인간의 영혼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왜 곤충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의 삶으로 스스로를 떨어뜨리려 하는가?
곤충에서 동물로, 그리고 인간으로 이어지는 그 숭고한 영혼의 레이어를 부정하려는가?
인간과 동물이 나누는 그 따뜻한 교감을 보라.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곤충으로 살아남아 군림할 것인가,
아니면 영혼을 품은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의 가슴에 잘 물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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